미래 먹거리로 주목받는 시스템반도체의 국내 시장이 발전하기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중소 팹리스 기업들의 성장 동력이 막히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 전체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짐에 따라,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요구되고 있다.
팹리스 생태계 구축 없이 동반성장 불가
국내 팹리스 제품 사용하도록 물꼬 터야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는 시스템반도체의 국내 시장이 발전하기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AI 촉발 이후 우리나라가 시스템반도체 후발주자로서 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요구되고 있다.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한 구조개혁 실천 포럼(국회의원연구단체)가 29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국내 팹리스 경쟁력 강화 및 산업 활성화를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고동진 의원은 인사말에서 “우리나라는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2% 수준에 불과하지만, 향후 4~5년간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및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산업을 잘 육성한다면 15년 내 TSMC 이상의 회사를 갖출 수 있을 것”이며, “팹리스의 생태계 구축 없이는 동반성장이 불가하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은 "국내 팹리스 업체는 파운드리에 시제품 생산을 수주할 곳이 없다”며, “역대 두 번째 대규모 경제개발 산업 정책으로, 팹리스의 고충을 이해하고 핀셋 지원하는 것이 필요할 때”라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첨단 반도체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중 제재 속 레거시 반도체 시장 점유율 확대에도 기회가 있다고 봤다.
이날 발제로 나선 이혁재 서울대 시스템반도체 산업진흥센터장은 국내 시스템반도체 시장 한계의 원인을 국내 팹리스 지원 부족에서 찾았다. 메모리반도체와 다르게 시스템반도체는 특정 어플리케이션에 최적화되는 반도체다. 보통 수요기업과 함께 제품을 개발하면서 시장을 창출하는데, 글로벌 기업이 시스템반도체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국내 중소 팹리스 기업이 경쟁력을 갖기에는 무리라는 평가다. 또한 팹리스가 주로 사용하는 28~65나노 공정을 하는 파운드리 업체가 없다는 점도 한몫한다. 해외 회사에서 칩 제조를 위탁하지만, 제작의 기회는 제한적이다.
고동진 의원은 이날 진행된 토론에서 좌장으로 나섰다. 토론에는 △김녹원 딥엑스 대표 △보스반도체 박재홍 대표 △페르소나AI 유승재 대표 △김경수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 △정재용 카이스트 경영대학 기술경영학부 교수 △이준희 중소벤처부 신산업기술창업과장 △이규봉 산업통상부 반도체과장 등이 참석했다.
■ 팹리스 글로벌 경쟁력 강화, ‘총체적 지원’ 강구
업계 전문가들은 시스템반도체 산업 활성화를 위해 연구개발, 인력 양성, 인프라 구축 등 정부 차원의 총체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특히 정부의 파격적인 재정적 지원을 요구했다.
김녹원 딥엑스 대표는 최근 급성장하는 온디바이스 AI 반도체 산업 확대를 위해 수요-공급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중소 팹리스의 글로벌 시장 진출 기회를 잡기 위한 공략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TSMC는 미국이나 일본, 대만 등에서 수조 단위의 지원금을 받았다”며, “해외에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대만, 일본 등으로 진출하는 방법을 고려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재홍 보스반도체 대표는 중소 팹리스 기업을 위한 재정적 지원 강화 및 인력 확보를 촉구했다. 최근 시스템반도체 개발 및 상품화 단계에서 개발비가 급격히 상승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시스템반도체 개발 인력이 부족한 가운데, 국내는 대기업으로 인력이 몰리고 있다.
박 대표는 국내 팹리스 산업 육성을 위해 △중소 팹리스 병역 특례 TO 증가 및 규정 개정 △해외 우수 인력 확보 정책 수립 △국내 대학 학과 확충 △팹리스 종사자 연금제도 마련 등 정책을 제언했다.
박 대표는 “국내 팹리스에는 기회도 오지 않는다”며, 그 이유로 “국내 시스템 회사들(국내 대기업)은 국내 팹리스 제품에 대해 리스크가 높다며 해외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국내 대기업이 중소 팹리스 기업을 발굴 및 협업 사례를 늘리고,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지원해 국내 팹리스 제품을 사용할 물꼬를 트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수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도 R&D 인력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전략으로 △스톡옵션 비과세 한도 상향 △연구 인력 세액 공제 △RSU(제한조건부주식) 비과세 한도 신설 등을 제시했다. 특히 K-칩스법으로 세제 혜택 지원이 가능해졌으나, R&D 투자금이 많아 단기간 내 혜택을 받기 어려워 초기에는 지원사업 위주 정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기존 반도체 정책의 한계를 꼬집었다. 칩 개발은 3~5년씩 걸리는데, 기존 하향식은 실시간 시장 대응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가 정책 방향성은 정하되, 산업별로 차별화된 기술력을 협업해 상향식을 제시했다. 또한 인력 양성에 있어서는 “시스템반도체 설계 전문가 양성 인력 양성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곳이 필요하다”며, “한국팹리스산업협회가 주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회장은 설계·디자인(DSP)·패키징(OSAT)·IP 기업들의 균형적 발전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성남시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안을 서둘러야 한다”며, “생태계 기업이 참여하기 위해 3~5만평 수준의 큰 부지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4월 정부는 AI-반도체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과기부 윤두희 과장은 “과거 CDMA 기술 상용화로 퀄컴이 굴지의 기업이 된 것처럼, 앞으로 30년간 엔비디아와 다르게 전력 효율을 극대화하는 NPU 등 AI 반도체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산업부 이규봉 과장은 “올해 하반기 내 시스템반도체 발전 전략을 수립해 온디바이스AI 등 신시장, 대규모 R&D, 레거시 파운드리 사업화 등 대책을 추가로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보조금에 관해서는 여건상 아직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